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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346 호 | 기사입력 [2024-07-23] | 작성자 : 강서구보

낙동강을 아느냐-김영순(강서칼럼)

강물이 맑나 시냇물이 맑나 강물이 맑지. 샛강과 도랑을 건너 뛰어 놀았던 아이들 놀이터의 끝자락은 언제나 낙동강 둑이었다. 우리들 유년시절은 거칠어도 풍요롭기만 했다. 광활한 낙동강둑 열린음악회, 둘이면 좋고 셋이면 더 좋다. 강물에 비친 내 얼굴 언제나 맑고, 지금은 노랫소리의 메아리로만 남아 있다.

이웃 마을로 시집을 간 나는 지금까지 평생을 강가에서 촌티를 벗지 못하고 살고 있다. 어릴 적엔 사상 쪽을 쳐다보며 저 강만 건너면 수돗물에 뽀얀 얼굴로 분칠해서 우아하게 살 텐데. 강 건너에 서서 부럽게만 쳐다보고 있었다.

유년시절에 콩이 튈 듯 낄낄거리면서 휘젓고 다니던 강둑길. 오늘날까지 수많은 얘깃거리 소재만을 끌어안고 그때 같이 놀던 친구들을 생각한다.

난 고향 지킴이로 남아 고만고만한 삶을 살고 있다. 홀치기 그물 메고 모래성을 달리던 강마을 사람들. 물 반 고기 반인 통을 흔들고 뛰다 미끄러져 정강이뼈를 다쳐도 청춘의 맨 다리는 신나게 달렸다. 해 저문 저녁 강은 노을이 눈부시고, 모래톱에 콕콕 찍어둔 내 발자국은 밀물이 썰어갔다. 어스름 녘 강물에 발을 담그고 징거미를 잡았다. 그때 어디선가 귀에 익은 순아, 들물이다 빨리 안나오나떨리는 엄마의 묵은 목소리가 강가에 메아리로 남아있다.

어릴 적 아버지는 이발소에서 여자아이인 내 머리를 바짝 올려 깎았다. 그때는 부끄러워 친구들이 볼까봐 전봇대 뒤에 숨어 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했다. 아버지가 안 계신 지금은 파마도 하고 머리도 길러 갈색으로 염색도 한다. 손톱에 바른 빨간 매니큐어를 아버지가 봤으면 빗자루 거꾸로 들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또 짧은 다리로 담을 뛰어 넘어 강둑길로 달아났을 것이다.

방과 후엔 언제나 깡통 들고 강둑으로 달려가 고기잡이를 즐겼다. 징거미 어린 잔챙이들이 살랑살랑 입질하며 몰려온다. 얼른 고무신 벗어 재빠르게 건져 올려도 신에는 아무것도 없다. 조금 때를 맞춘 낚시꾼들이 대박을 기대하며 미끼를 던졌다. 하지만 실파 같은 갈치 한 마리가 낚였을 땐 도다리는 요 때다 싶어 삼십육계를 놓는다. 그다지 재미를 못 본 낚시꾼은 빈 통 들고 한숨이 짙다. 건너편 샛강 도랑물에 낚싯대를 걸어놓으면 도랑물 붕어새끼 세 마리가 승자되어 홀연히 사라진다.

친구들과 갯벌 조개잡이 땐 언제나 난 앞장섰다. 그런데 내 조개 소쿠리는 늘 땅을 짚는다. 반소쿠리라도 채워야 집으로 갈 텐데. 무겁게 조개를 잡은 덩치 큰 친구에게 사정해 본다. 반소쿠리만 나에게 팔아라고. 그 때 친구는 활짝 웃으며 침을 꿀꺽 삼키며 나의 작은 소쿠리를 조개로 채워주었다.

아버지께 칭찬 들을 걸 생각하며 신나게 집으로 뛰어간다. 무겁게 머리에서 내려놓은 조개 소쿠리를 본 아버지는 큰 소리로 아이구 애가 무슨 조개를 이렇게 많이 잡았노.” 깜짝 놀라신다. 그날 저녁 재첩국 솥에 불을 지필 때 앞뒷집 모두 조개 씻는 소리가 싸그락 된다.

옹기종기 집집마다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올라 골목길을 덮는다. 오늘날까지 나는 조개잡이 선수로 알려졌지만 지금에야 가짜 조개잡이 선수였다고 말하고 쓴웃음 짓는다. 영원한 나의 팬, 낙동강이여.

별빛 많은 밤하늘 아래서 쌍쌍이 짝을 이루고 갈대밭을 들락거릴 때 내 알아봤다. 면경같이 곱던 평화언니는 어떤 총각과 눈이 맞아 별들이 총총한 밤하늘 아래서 초야를 치렀던가. 불러오는 배를 감추지 못하고 자기 오빠한테 들켜 그날 저녁 대문 밖으로 쫓겨나기도 했다. 그 총각과 어떻게 살고 있는지 기척이 없는 것을 보면 지금쯤 회초리를 들고 자식들을 가르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 나이 일흔을 돌아보면서 문득 생각난 정겹고 아름다운 추억들이다.

이제 홍시가 열릴 때면 한점 한점 더듬으면서 천천히 노년의 자태를 뽐내고 싶다. 세월의 변천에 따라 낙동강둑은 벚꽃축제, 유채꽃축제로 해마다 상춘객들로 카메라 셔터소리가 난무한다. 젊은이들이 사이클링으로 쌩쌩 달리는 낙동강에는 금수현 선생의 그네가 흘러나온다. 벚꽃나무 밑에 깔아놓은 돗자리에는 커피향이 짙다. 그들에게 그냥저냥 먹고살던 애틋한 우리 마을의 옛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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