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덕을 깨우는 ‘선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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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덕을 깨우는 ‘선창’

1960년대 선창 사진

↑ 1960년대 선창 뱃머리 전경

2000년대 선창 사진

↑ 2000년대 선창 뱃머리 전경

마을버스 출발지가 된 선창 사진

↑ 가덕도 마을버스 출발지가 된 선창

2013년도 선창포구 사진

↑ 2013년도 선창포구 전경

부산신항 건설로 육지가 된 가덕도 선창.

옛날에는 하루 두 번 무동력선 돛배를 이용 해 진해 용원 선착장까지 도선이 운항되었던 낭만 어린 항구였다.

이곳 선창을 통해 대항에서 잡은 ‘가덕대 구’, 눌차만의 ‘바지락·굴’, 천성의 ‘미역’, 동 선·성북의 ‘양파’ 등이 가덕해로의 물살을 가로지르며 인근 녹산장, 웅천·용원장으로 실려나갔다.

멀리 낙동강 수로를 이용한 삼량진장과 부산 자갈치시장까지 판로를 넓히는 등 배를 이용한 상업 행위가 왕성한 포구였다.

이 때문에 선창 뱃머리는 회항하는 돛배들 의 장사진 속에서 떠나는 사람과 돌아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고종 8년(1871)에 세워진 가덕도척화비는 이 마을 갈마봉 끝자락에 방치되어 있던 것을 1995년 천가초등학교 교정으로 이전·복원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때는 조선수군의 주둔지로서 해안방어기능을 다했던 곳이기도 하다.

임란이후 이곳을 굳건히 지켜 온 네 분의 절 제사불망비가 마을 어귀에 차례로 세워져 있으며, 병사들의 무기를 생산·보관하던 병기 곶 등의 유적이 있어 이 지역을 찾는 사람들에게 역사의 산교육 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현재 가덕도는 선창에서 출발하는 가덕도 일주도로 완공이 마무리 단계에 있으며, 우리 나라 경제의 거점도시 세계적인 항만중심도시로 우뚝설 가덕도 종합개발 계획이 세워져 있다.

담당자
문화체육과 / 문화예술계 (051-970-4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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